티스토리 뷰

일상이야기/음악이야기

Flute

JEK Hong 2010. 4. 10. 04:42

요 며칠 영국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내가 외국에 와서 가족 친구들이랑 떨어져 혼자 있구나..라는 게 새삼 실감나는 나날을 보냈다.
무기력하게, 마음은 약해져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젯밤 정신을 차렸다.
대전에서 다니던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부활절 설교 말씀을 듣고.. ^^;;

일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때의 그 한 달간의 모든 순간순간들이 떠오르고,
낮에 통화했던 할아버지와 삼촌이 생각나고..
가족들도 그립고.

내가 서울에 올라와 재수할 때, 울 엄마도 같이 고생 많이 했다.
학교 수업하랴, 가끔 올라와서 나 밥 사주랴, 위로해주고 힘주랴, 도시락 반찬까지 신경써서 이모네 냉장고에 넣고 가랴.
어쩔 때는 힘들다고 우는 내 전화를 받고 바로 서울로 올라온 적도 있다.
그 때마다 나는 감사하고 죄송해서 어쩔 줄 몰랐는데, 그 때마다 엄만 그랬다.
감사하고 죄송한 만큼, 그 마음까지 공부에 쓰라고. 나중에 니가 잘 되면 되는 거라고.

이런 저런 일들이 다 스쳐 지나가면서 내린 결론은,
지금도, 여기서도 사람들이 그리운 만큼 그 마음을 요 두달 반 동안만 이곳에서의 시간에 충실하게 쓰고 가면 한국 가서도 후회없이 더 좋지 않겠어?!
라는, 간단하지만 생각해내기까지는 참 어려웠던..

그래서 오늘은 아침일찍 일어나서 바로 준비하고 도서관에 가서 좋은 자리를 맡았다.
점심시간 정도 즈음에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플룻을 들고 나갔다.
어느샌가부터 난 사는 것처럼 살자고 다짐을 하면서 정신을 차린 날들이면 공부도 기분좋게 하고, 꼭 플룻을 들고 나간다.
무기력하고 마음이 약해지면 공부는 물론이고 플룻까지 불기가 싫어진다.


내 보물 1호.
영국에 오기전까지 반년 이상을 불지를 않아 악기가 나한테 많이 삐져있었다ㅠ
달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다구.ㅋㅋ 요즘도 위태위태 하다 ^^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동아리 두 개에 학회에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느라 초반에 아빠엄마랑 싸우기도 했었는데,
학과공부 착실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선 그 때부터 아빠 엄만 내가 하는 것을 쭉 지켜보면서 믿어줬다.
그 후에 9월, 우리 윈드앙상블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불던 플룻을 들고 연주회에 처음 섰을 때,
아빤 소리가 너무 작고 약하다면서 새로 사야지 않겠냐고 내가 감히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막연한 바람을 이뤄주셨다.
그 일 년 후엔 아빠와의 약속을 내가 잘 지키지 못해서 동아리 생활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ㅠ

그래도, 동아리를 제대로 못해도, 플룻이 없으면 나한테 이거 아닌 다른 낙이 무엇일지 잘 모르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직업으로 삼든, 주말에 어딘가에 가서 악기를 불고 합주를 할 수 있으면 상관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이제 졸업도 얼마 안 남았고 나도 취업 준비를 해야하는 나이가 되니, 저런 철없는 생각은 팍 줄어들긴 했지만.

이곳에 와서, 하루를 정리하며 침대에 누웠을 때 가장 뿌듯했던 날은 항상 일과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음악을 튼다. 음악은, 플룻곡이나 예전에 연주회 했을 때의 실황이랑 다른 내가 좋아하는 관악곡 정도.
그러면 마음이 막 설레면서 그 기운에 기대어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해야할 일도 하면서 혼자 플룻 불면서 놀러 연습실에.!
신기하다. 그 설렘은 하루가 끝날 때까지 쭉 이어진다. 오늘도 그랬다.

난 음악을 그렇게 잘 알지도, 하지도 못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냥 플룻 부는 게 좋고, 연습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잘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만이라도 플룻을 놓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나중에 정말로 플룻을 마음 편히 불 수 있게, 그에 대한 설렘도 지금은 나를 가꾸는 것에 써야지.

'일상이야기 > 음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눈과 함께 피아노곡  (0) 2015.11.26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