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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마지막 날,
런던의 큰 행사인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불꽃놀이를 보고 2010년 새벽이 되면 집에 가는 기차는 이미 운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룻밤은 런던에 있는 한인민박집에서 자기로 했었다. 공항에서 온 친구들을 맞아 민박집을 찾아가 짐을 풀어놓은 다음, 저녁 식사를 하고 7시 20분 즈음 숙소를 나와 Vauxhall Bridge 쪽으로 나간 다음 강을 건너지 않고 강을 따라 쭉- 건넜다. 20분 정도 걸으면 빅벤과 오늘의 주인공 런던 아이, 웨스트 민스터 사원이 보인다.

'Firework viewing area'라고 적힌 곳은 수많은 인파의 질서를 잡기 위해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보호대를 지나 보였던 큰 문은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닫는다고 했다. 최대한 강 건너편의 런던 아이를 정면에서 보기 위해 사람들을 뚫고 왼쪽으로 걷고 또 걸었다. 새해가 되기 4시간 전이었지만 이미 좋은 자리는 우리보다도 훨씬 더 미리 나왔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런던 아이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지만 내가 이 날 건진 유일한 사진이다. 여기가 좋겠다, 하고 멈춰서서 땅에 발을 붙인 건 밤 8시 20분 정도. 여기 꼼짝 없이 서서 세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10시 정도 부터는 런던아이의 조명이 정말 다양하게 바뀌면서 너무 예뼜었는데, 사람도 많고 키가 큰 분들이 많아..ㅠ 대부분의 사진이 흔들리고 잘리고 해서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 지워 버렸다. 런던 아이와 빅 벤과.. 런던의 야경은 나중에 날 잡고 삼각대를 가지고 와서 제대로 찍기로 했다.

행사는 15분 간격으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DJ분이 분위기를 돋구었다.
"Hey, London. Put your hands up!" 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든다던가.. 불꽃놀이를 찍으려고 하늘에 떠 있는 세 대의 헬리콥터 중 하나만 가까이 지나가도 신호를 보내고, 헬리콥터에서 보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에 맞추어 하늘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린다던가. 꼭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우리 나라 분위기가 생각났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같은 목적으로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끼는 거.

날씨도 꽤 쌀쌀했고 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주위에 술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한 분은 한 동안 내 친구 등에 기대어 서 계시기도 했다 ^^;;
사람이 얼마나 많았냐 하면, 네 시간 전에 온 우리도 꽤 밀려나 뒤에서 계속 뚫고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힘겹게 지탱했어야 했는데, 아홉시 넘어서는 강변으로 오는 길은 아예 통제되어 그 이후에 온 사람들은 강가에는 들어오지도 못했다.

어쨌든, 끊임없는 수다와 분위기에 취해 꾸역꾸역 네 시간을 보내고(첨엔 시간이 참 안갔는데 아홉시를 넘기니까 세 시간은 금방 가버렸다) 어느 새 카운트 다운,

"10, 9. 8, 7, ..............., 1, Happy New Year!!!!!"

환호성과 함께 시작한 불꽃놀이는 어떤 단어를 대어도 부족할 만큼.. 환상적이고.. 멋졌고.. 너무 예뻤고.. 아 나의 표현 실력이 너무 한탄스럽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 뷰어를 통해 보지 못하고 그냥 손을 뻗어서 찍어 댔기 때문에 잘못 나온 사진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얗게 밤하늘을 수놓았던 불꽃도 있었고,


노랗게, 금가루같은 잔재를 남기며 아기자기 하게 터지기도 하고..





런던에서 새해를 맞아 불꽃놀이를 본 것이 너무 감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런던 아이. 불꽃들은 런던 아이의 관람차 하나하나에서 (어디에 설치해놨는 진 모르겠지만) 쏟아져 나왔다. 저기저 둥그렇고 조그만 빨간색 불꽃도 하나하나가 런던 아이 관람차에서 뿜어져 나온 거다.





이렇게 잘게, 산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넓~게 잔재를 흩뿌려 내리면서


잠시 불꽃이 멈춘 틈에는 우주를 보여주는 듯한 이 불꽃은 정말 신비롭고, 그야말로 별천지. 장관이었다.





불꽃놀이가 끝에 다다를 수록 하늘은 저렇게 희뿌연 먼지로 가득차서 불꽃놀이가 희미하게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먼지들도 효과적으로, 잠시 후 먼지가 온 하늘을 덮었을 때, 밑에서 레이저를 쏘았는지 번쩍하면서 온 하늘이 하-얗게 변했었다. 영국의 대낮보다도 더 밝게.

불꽃놀이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 빅 벤을 지나자마자 가로등에 이상한 게 비추었다. 맑던 하늘에서 때 맞추어 눈이 왔다. 정말 우연스럽게, 딱 고 때에만.
십 분 정도만 내리고 거짓말처럼 그쳤다. 환상적인 불꽃놀이도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불꽃놀이를 감사하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새해다짐도 많이 하고. (그 정도로 불꽃놀이가 길었다...!) 거기다가 끝나고 가는 길엔 눈까지 예쁘게 내려주니, 2010년을 맞이 하는 느낌이 왠지 좋다.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영국인들은 기분 좋게 웃으며 Happy New Year~ 인사도 해주었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소심하게 속삭였는데 나중에는 나도 함께 ^^

수많은 인파, 템즈강변, 불꽃놀이, 국적이 다른 사람끼리의 연대감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뭉친... ^^;; 다른 유럽 대륙/중국인들도 무지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새해 인사. 이건 분명 런던에 오지 않았으면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벅찬 경험일 거다. 새해를 너무 즐겁고 정말 단어 그대로 활기차게 시작했다는 기분좋은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나의 마음을 동시에 가득 채운 것은 아빠 엄마에 대한 무한한 감사함이다. 아빠 엄마도 이 자리에 같이 있으면 좋았을텐데.. 이 미안함과 감사함 모두 합해서 여기 있는 시간 일 분 일초도 헛으로 보내지 말아야지. 뭐 이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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