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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Jan.2010

금, 토, 일요일이 되면 런던 여기저기에선 장이 선다. 주제도 다양하다. 저렴한 먹을 거리가 가득하다는 버로우마켓, 대표적인 앤틱시장인 스피틀필즈 마켓. 새해 첫날을 기분좋게 맞이하고 2010년의 첫 주말 나는 친구들과 노팅힐의 포토벨로 마켓에 갔다.


포토벨로 마켓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지하철을 타고 Notting Hill Gate 역에서 내린다.


영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노팅힐이라는 이름은 그 동네가 무척 낭만적일 것 같은 왠지 모를 기대가 생긴다. 영국에 와서 많이 느끼는 것이 우중충한 날씨에 비해 버스든 건물이든 간판이든 색깔을 참 잘 쓴다는 것인데, 원색보다는 파스텔 톤을 좋아하는 나에게 노팅힐은 너무너무 이쁜 동네였다.


지하철 역에서 내리면 길 두 어개를 지나 Portobello Road를 찾아야 하는데 사실 이곳 시장을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워낙 현지인들이나 관광객들이나 장이서는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곳으로 그냥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포토벨로 길을 찾을 수 있다. 이곳이 포토벨로 마켓의 입구격인 곳이다. 이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는 사람들도 무지 많았는데 그걸 보고 괜히 마음이 편했다. 다 관광객이구나.. 이상하게 여행을 다니면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은데, 나 아닌 다른 관광객도 많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마음이 괜히 놓여진다. 나만 이방인이 아니라는 뭐 이런 생각 떄문에 ^^;;


포토벨로 길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풍경. 아직 마켓이 서 있는 곳은 아니지만 건물 일층 마다 작은 가게와 갤러리들이 있다. 이곳들은 평일에,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을 때 또 보러 오기로 하고 패스.


길을 가다 보면 악기를 켜면서 노래를 부르는 자유로운 영혼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런던에선 지하철에서도 악기 소리가 많이 들린다. 전자 기타, 플룻, 드럼, 노래....


내가 영국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느 거리, 어느 마을을 가도 특유의 영국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무척 다양하다는 점이다. 특히 그 점을 확실히 하는 것이 건물. 생김새와 늘어선 모양과 색깔.. 노팅힐은 정말 그만의 특색이 뚜렷했다. 모양은 단순하게 직육면체의 건물로 된 것이 죽 늘어서 있는데 대신 색으로 하나하나를 구분지은 것. 마켓 구경을 끝내고 '와, 여긴 좀 사는 집들 같다...'라고 느끼는 곳들도 모양만 달랐지 쭉 붙어 늘어서 색으로 한 가구 한 가구 구분 지어 놓은 것이. 그냥 다 노팅힐스러웠다.


요 2층은 연도가 보이질 않네.. 아무튼 언제부터 언제까지 동물농장을 쓴 소설가 조지 오웰이 살았다는 집..! 예전에 프랑스 여행 갔을 때도 분명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데 1700년대 누구, 1800년대 누가 여기 살았다고 문패를 붙여 놓은 것을 많이 봤다. 그 때 지어졌던 집에서 지금까지 사람이 산다니. 유서깊은 역사와 현재가 너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쌩뚱맞다고 생각했던, 고층 빌딩과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동대문이 문득 떠올랐다.


드디어 포토벨로 마켓의 제대로된 시작.! 상인들의 건물앞에 테이블을 내놓고 자신만의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끝이 보이질 않는, 도로를 아주 꽉 채운 사람들 행렬. 사람이 너무 많아 마켓을 줄지어 사람 행렬을 따라가며 봐야했다. 박물관 관람하는 것처럼..끝없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양 길가에 서있던 마켓도 정말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곳은 오래된 책과 공구들을 파는 곳이었다. 컴퍼스나 자 같은 것들.. 왠지 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약간 헐거워진 듯한 책을 보면 괜히 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마다 인기 만점이었던 저거. 나도 하나 정도 사고 싶었는데 한 두개만 딸랑 사면 별로 존재감이 없을 듯 해서. 손으로 만든 것 같은데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자연사 박물관에 있을 법한 이런 것들.


실제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켓 구경은, 물론 물건 내놓고 파는 사람들의 입장은 잘 모르겠지만 꼭 돈을 내고 무언가 사지 않더라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위에 매달린 주방도구들.. 그것말고도 고풍스럽고 앤틱한 주방용품들이 무지 많았는데 여기 둘러보면서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났는지 모른다. 엄마 이런 거 무지 좋아할텐데..


악세서리! 첨엔 저 호박같은 누렇고 갈색의 보석이 늙어보이는 것 같아 별로 눈길이 안 갔는데 발레리나 모형이 달린 귀걸이를 보는 순간 정말 심하게 갈등을 했다. 하지만 영국에 와서 많은 경험으로 생긴, 충동 구매를 누르기 위한 버릇.. 마켓을 다 돌고 그래도 눈에 밟히고 사고 싶음 사자.. 라고 가격만 물어보고 자리를 떠났는데 마켓을 다 돌고는 아예 이곳을 잊어버리고 말았다.ㅋㅋ


우와 +_+ 나는 시계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아빠가 크리스마슨가 생일 선물로 미니마우스 손목시계를 사주신 이후로 그 때부터 손목 시계를 빼 본적이 없다. 시계를 어딘가에 놓고 오거나 잃어버려서 하루라도 손목에 시계가 없으면 시간을 확인 못해서 답답하기도 하고 내 왼쪽 손목이 너무 헐거운 게 신체 일부가 없어진 것처럼 무지하게 허전하다. 안 그래도 프라하에 다녀오면서 내 사랑하는 시계가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가질 않는다. 왜 하필 여기 와 있을 때..!! 당장 가서 배터리를 갈고 싶지만 우리 동네 근처에 시계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한국선 2만원이면 되는 걸 여기서는 몇 배로 또 비쌀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려면 6월까지는 참아야 하는데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흑


마음에 들었던 가게 중 하나. 깃털펜..! 진짜 이런 걸 쓰는 구나.. 영화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던 게 저 깃털펜은 잉크를 어떻게 빨아올릴까 하는 것이었는데 눈앞에서 보고도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깃털펜과 함께 있었던 이 물건. 도장인 것 같다. 알파벳으로 되어있는 건 옛날이 활자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요놈들이 또 신기했다. 우리가 먹는 김이 눅눅해지지 말라고 포장에 같이 들어있는 방부제만한 크기의 작고 딱딱한 색색가지의 알갱이들인데 6시간동안 물에 담가놓으면 물을 빨아들여 지름이 1cm정도 되는 물구슬이 된다. 여기에 꽃을 꽂아놓으면 싱싱하댄다. 식물가꾸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서 나도 하나 구입했다.

이건 옛날 사진기들. 정말 이런 걸 요즘에 사서 쓰는 사람들이 있을까. 시장이라기보단 박물관같았던 마켓.

마켓이 너어어어어무 길어서 사람도 많고.. 구경하다가 골목길이 보여 중간에 나왔다. 그 골목길에서 지하철역을 찾아가는 길 봤던 많은 집들. 들어가는 문이 일층에 저거밖에 없는 걸보니 사층집인건가. 노팅힐 어디 쯤가면 부자 동네가 있다던데 여기가 거기인지. 색깔도 너무 예뻤고.. 나도 저런 좋은 집에서 살아봤으면, 아니 들어가서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나 했음 좋겠다. ^^;;

한국에 갈 때까지 런던에서 여는 마켓을 모두 한번쯤은 가보려고 한다. 얼마 전에 '걸어서 세계속으로' 다큐를 보는데 나레이터가 한 말 중에 시장을 가보면 그 나라를 잘 알 수 있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난다. 어느 낯선 곳을 여행하든 그곳은 다 사람사는 곳이고, 여행의 묘미가 뭐 유명한 곳 찾아가서 인증사진 찍고 구경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문화와 풍속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일 거다. 마켓을 구경하면서, 국적과는 상관없이.. 작년에 가족여행을 갔다가 울진 장 서는 날이 시장 구경을 했을 때 느꼈던 훈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재래시장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외국선 몇 백년 된 마켓, 뭐 이런 식으로 소개되면 무지 멋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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