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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날. 긴장이 풀려서인지 일찍 잠이 들었었다. 그러고선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깬 시간이 6시. 한 층에 방은 30개가 넘는데 샤워실은 두 개 뿐이라 부지런히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집이었다면 분명 십 분만 십 분만.. 하다가 한 두 시간은 더 잤겠지 ^^;;


일곱시에 아침을 먹고 바로 숙소를 나갔다. 숙소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25분 정도 걸린다. 8시 15분 경 버스 정류장에 도착.! 첫날 구해 놓은 버스 시간표를 보니 오늘 가려는 Amboise, 앙부아즈는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Filvert 버스의 C라인. 단돈 1.7 유로!

버스 정류장 데스크에 가서 다짜고짜 영어로 물었다. 첨엔 Amboise를 불어로 어떻게 읽는 줄을 몰라서 브로셔를 내밀면서 여기 어떻게 가냐고. 데스크에 계시던 직원분은 친절하게 불어로 대답을.. 시간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해주면서 말씀해 주셨다. 정말 신기했던 건, 그렇게 얘기하는데 앙부아즈로 가는 첫 차인 8시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다음 버스는 12시 반에 있고 돈은 여기서 티켓을 사는 게 아니라 운전사에게 직접내라는 이 복잡한 정보를 내가 다 알아들었다는 거다. 눈치로 크크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뚜르 시내를 돌아다닐까하다가 비도 오고 추워서 숙소에 가서 다시 잤다. 그리고는 두 번째 버스 시간에 맞추어 다시 나갔는데 숙소와 시내가 좀 떨어져 있는게 어찌나 귀찮던지ㅠ


난 어디를 가든 걸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이곳 저곳 제대로 둘러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내가 걸어다니며 볼 수 있는 곳도 좋았지만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환상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기차를 탔을 땐 주로 산. 영국은 아기자기한 마을이나 넓은 평원이나 호수랑 공원. 프랑스는 아기자기한 마을과 함께 많이 눈에 띄었던 것이 포도밭이었다.

창밖을 실컷 구경하는 와중에도 긴장하고 버스시간표를 살피고 시간을 체크해가면서 이동했다. 앙부아즈에도 여러 정거장이 있었는데 성을 가려면 어디에서 내려야할 지 전혀 몰랐고 특히 서양은 다 그런지... 영국의 우리 동네도 그러던데. 버스에서 정차하는 역을 알려주지를 않는다ㅠ 특히 여기는 뭐 내린다고 벨을 누르는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니 그냥 목적지에 다 왔을 때 쯤 알아서 문 앞으로 나가 있는 거였다.

버스시간표에 찍힌 시간상 앙부아즈에 온 듯 했는데 문제는 어디서 내려야하는지 모르니까.. 다행히 앙부아즈의 한 정류장이 종점이었어서 나중에 돌아올 때도 편하게 거기서 내리자 해서 계속 앉아있었는데 막상 종점에 와서 내리니 허허벌판에 도저히 시내같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또 운전기사 분에게 물어봤는데 역시 영어를 못하시네.. 20분이나 통하지도 않는 대화를 계속하면서 내가 미리 챙겨간 앙부아즈 지도를 서로 살펴보고 하다가 결국 눈치로 10분만 더 기다리라고. 그러면 버스가 다시 돌아가니까 그 때 어디서 내리는지 알려주겠다고. 라고 하는 듯한 운전기사 분의 말을 대충 알아듣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버스가 출발한 후 두 정거장 후에 기사 분이 알려주셔서 내렸다.

이 때 심정은 정말 막막..해서 Tours가 버스의 종점이겠다, 앙부아즈 성 보는 거 포기하고 그냥 숙소에 돌아가려고 했었다. 운전기사 분이 제대로 된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안 챙겨 주셨으면...


어쨌든 앙부아즈에 무사히 도착..! 론리플래닛에 나와 있던 앙부아즈 지도에서 내가 서있는 곳 같은 곳을 찍은 다음 주변 건물을 확인하니 내 바로 앞에 있던 우체국이 지도와 들어맞았다 크크 (5일 동안 여행하면서 난 점점 지도 읽기에 신내림을..ㅋㅋ) 사실 론리 플래닛 지도는 자세하지 않다. 길 이름도 잘 안 써있고.. 다행히 'Le Chateau'라는 표지판이 꾸준히 세워져 있어줘서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성으로 가는 길에 보인 우체국. 인영언니가 부탁한 형광노란색 우체통을 보고 반가워서 찰칵. 난 우체통은 무조건 빨강인 줄 알았는데. 어디 우체통이 파란 곳은 없나 ^^;; 이제까지 떠올리면 가장 기분이 좋은 우체통은 더블린의 초록색 우체통이다.

평일 오전이기도 했고 비도 오기도 하고 해서 사람이 정말 없었다. 처음엔 저 둥그런 성벽을 보이는데도 내가 성에 도착했는지 몰랐다. 중세에 지어졌다는 깊은 역사를 간직한 이곳이 현대의 프랑스 거리와 너무 자연스럽게 마주보고 있는 게 낯설어서일 것이다. 입구까지 올라가면서도 'Entrance'를 보기 전까진 맞는 걸 찾아서 잘 가고 있는 건지 계속 긴가 민가 했을 정도니깐.


눈물이 날 정도의 감동이었다. 이 날 두 번이나 언어의 벽에 부딪혀서 하루 일정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나는 매표소 직원이 국적이 뭐냐고 묻길래 아무 생각없이 Korea라고 했더니 저렇게 한국말로 된 안내서를..! 보통 저렇게 물으면 English please라고 하는데 나도 정신을 놓고 있었나보다 ^^;; 진짜, 정말 좋았다. 한국말 안내서.. 뿌듯하기도 하고.


매표소를 나와 성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광경이다. 요새의 역할을 했던 성답게, 앙부아즈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옛날에 병사들이 보초를 서던 곳이라고 한다. 여기 와서 내가 좋아하게 된 프랑스의 건물. 특히 집. 영국은 벽돌집과 벽돌 건물이 참 많은데 프랑스의 건물 외관은 깔끔하고 심플하다.
맨 윗쪽 줄의 세 개의 사진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저 건물은 채플. 요기가 또 중요한 곳이다.


성 위베르 채플. 프랑스로 날아오기 전, 뚜르 주위에 갈 곳이 어디 있을까 여행책을 읽다가 발견한,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발견한 뿌듯하게 생각되는.. 명소?ㅋㅋ 중의 하나. 이곳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잠들어 있다. 채플 안에 저 가리개를 해놓은 게 그의 묘지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건축과 예술에 관심이 많던 프랑수아 1세의 초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곳 앙부와즈로 와서 남은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살던 곳은 이따 소개할 끌로뤼세 성이고, 사후에는 그의 원대로 이곳 앙부아즈에 묻혔다고 한다.


앙부아즈 성은 먼저 15세기 후반 찰스 8세의 명으로 중세후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다. 위에 있는 창문이 고딕양식인데 그 건물 부분은 제일 오른쪽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날개 부분이다. 후에 16세기, 프랑수아 1세와 2세는 다른 쪽 날개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설한다. 아랫쪽 창문 사진이 르네상스 양식. 몰랐는데 화려하고 쓸데없이 장식 많고 복잡한 예술품들이 아니 최소한 그런 건축물들이 내 취향인가 보다. 여러 가지 성을 보면서 내가 꼭 와 예쁘다- 맘에 든다 하는 부분은 다 르네상스 양식이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경호원실을 지나 경호원들의 산책장이 보인다. 날씨가 흐려서 잘 보이지 않는데 저 강건너편까지 다 보인다. 루아르 강의 9개 다리 중 하나를 감시할 수 있는 위치라고 한다. 다음 사진은 어전 회의실. 양쪽으로 큰 벽난로가 있다. 홈스테이를 가서 벽난로가 얼마나 따뜻한지 그 유용성을 몸소 느껴서 그런지 버킹엄궁이나 윈저성 갔을 땐 기억에 남지 않은 벽난로가 이곳 성 방과 방마다 어찌나 많이 눈에 띄던지.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내가 들렀던 성마다 땔감타는 냄새와 (난 어렸을 때부터 타는 냄새가 좋았다..^^;;) 탁탁 거리면서 땔감이 타는 소리.


이곳은 왕의 침실과 집무실. 특히 난 선명한 크림슨 색 벽지로 도배된 집무실이 가장 좋았다. 피아노 뒤에 있는 초상화는 압델 카데르. 1800년대 프랑스 정부가 알제리 정복에 나섰었는데 그 때 알제리 족장인 압델 카데르를 포로로 데려와 석방시킬 때까지 4년을 이곳 앙부아즈 성에서 지내게 했다고 한다.


성을 나오면 입구에서 본 성의 반대편 모습과 넓은 정원이. 동양식 정원, 포도밭, 레바논 삼나무 등등 정원 부분부분마다 다른 조경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춥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빨리 성에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앙브아즈 성 방문은 이걸로 끝.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여생을 보냈다던, Clos Luce 성. 난 앙브아즈 성보다 여기가 더 좋았다 ^^;;

날이 추워서 장갑을 끼고 있어서 지도를 가방에서 넣었다 뺐다 하기가 번거로워 귀찮던 참인데 다행히 성에서 나오자 마자 Clos Luce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나온다. 길이 바뀌려고 할 때쯤 다시 나타나줬던 이 표지판 덕분에 끌로루셰까지 무사히 도착. 한 번 애매한 화살표 방향땜에 고민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아주 깊숙이 갔다가 다시 돌아나온 거 빼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썼던 침실과 독서실, Great Hall과 식당. 아담아담했지만 알차게, 적당하게 채워진 당시의 가구들. 이 곳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주로 데생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Great Hall은 응접실로 쓰여서 외부에서 오신 손님을 이곳에서 맞았다고 한다. 저 벽면에 붙어 있는 그림은, 난 첨에 보고 모나리자! 인줄 알았지만 모나리자 진품은 루브르에 있으니까.. 프랑수아의 초청을 받고 알프스를 넘어 이곳으로 올 때 자신이 그렸던 그림 중 가장 아끼는 그림 세 점을 가방에 넣어 가져왔는데 저 'painting of Florentine lady'가 그 중 하나라고 한다.

끌로 루셰 외부와 넓~은 앞마당. 말이 앞마당과 정원이지 공원 수준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곳을 거닐면서 휴식을 취했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고성방문 첫째날 안내서를 읽으며 관련 인물에 관한 설명을 읽으며.. 그 사람들의 자취와 업적을 하나하나 짚어가는데, 이곳에 오기 전에 프랑스 중세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왔다면 마음이 더 깊이 와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현대에 와서까지 어떤 존재의 사람인지 아는 것 만으로도 끌로루셰와 앙브아즈 성의 채플이 나한테 굉장히 뜻깊은 장소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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