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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쉬농소성 보러 가는 날. 6시에 기상해서 아침밥을 먹고 8시 반 정도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프랑스에 있던 동안 난 하루도 빠짐없이 6시에 일어났던 것 같다. 모처럼 온 여행이니 늦잠을 자고 시간을 헛으로 보내면 다 낭비고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더 긴장하고 일찍 일어나고 온종일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찍으려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버스역에 가서 물어보니 다행히 쉬농소는 버스가 간다. 앙부아즈 갔을 때 탔던 C라인 버스가 그대로 가네. 버스역에 있던 직원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여기서 출발하는 시간과 쉬농소에서 돌아올 때 버스 타야하는 시간을 버스 시간표에 동그라미 해 주신다. 9시 차를 타고 갔는데, 12시 반차를 타고 돌아와야 한다. 아니면 그 다음 차는 6시 차 밖에 없다.

버스 기사 아저씨께 쉬농소 간다고 얘기하고 1.7유로를 냈다. 쉬농소를 불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잘 몰라 더듬었더니 웃으면서 고쳐주신다. 인상이 매우 좋은 아저씨였다.




뚜르에서 쉬농소까지는 한 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이 버스도 정차하는 곳이 어딘지 방송을 안 하네.. 한 시간 정도 잤다가 내리기 20분 정도부터 긴장하고 밖을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버스 기사 아저씨가 손을 들어 나를 부르신다. 여기서 내리는 거라고. 그러면서 날 잠깐 보시더니 운전석 구석에 가지고 다니시던 버스 시간표에 동그라미를 하면서 이 시간에 꼭 타야 한다고, 내린 곳의 반대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서 내리라고 말씀해 주신다. 너무 감사하고 좋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merci', 감사합니다 밖에 없는 게 얼마나 죄송했던지. 계속 웃으며 메르씨메르씨를 연발하면서 감사한 내 마음을 꼭 알아주셨길 빌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쉬농소 성의 표시가 보인다. 주변은 온통 포도밭이었다. 이곳도 샹보르처럼 허허벌판인 시골에 아무 것도 없이, 저렇게 좁고 긴 숲길을 지나서 성 하나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 쉬농소 성은 왕의 여인들의 성이라더니 정말 휴양지스러웠다. 정치와 일에서 떠나 아름다운 성 안에서 럭셔리하게 놀고 먹고 성을 관통하면서 흐르는 강에서 보트도 타고. 끝없이 펼쳐져 완벽하게 꾸며진 정원을 거닐고. 끊임없이 들리는 산새소리와 시원한 공기랑 풀, 나무 냄새. 여자들 뿐만 아니라 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 난 여기서 들렀던 5개의 성 중에서 쉬농소가 가장 좋았다.


숲길을 지나 입장료를 내고도 숲길을 10분 정도 걸으면 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구 쪽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건, 저 건물. 오른쪽으로 길게 세워져 있는 저것은 옛날 왕실 마굿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식당 등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로 쓰이고 일부는 중세 시대 이 쉬농소 성의 주인이었던 여인들을 본따 만든 왁스 인형을 전시해 놓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왁스박물관에 들어가려면 성과 별개로 입장료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이 날 걱정했던 게 날씨가 무지하게 흐렸다. 여행에는, 그리고 풍경을 볼 때는, 사진을 찍을 때는 하늘이 무지하게 중요한데. 버스를 타고 오다가 뚜르를 벗어나자마자 갑자기 짙은 안개가 깔려서 도로가에 있는 집들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었다. 저게 바로 쉬농소성. 프랑스 오기 전 여러가지 사진을 찾아보다가 젤 맘에 들었던 외관 중 한 곳이라 성을 다 구경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사진찍을 생각에 너무 기뻤다. 흐리고 뿌연 하늘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저것은 성의 옆면.


쉬농소 성은 16세기에 지어졌다. 여인들의 성답게, 건설을 주관하고 건설에 많은 역할을 한 사람도 여인이었다고 한다. 이 성에 살았던 사람은 미망인이 된 왕비서부터 왕이 총애했던 여인까지 다양하다. 위 사진은 데 마흐끄 타워와 우물.


쉬농소 성도 한국어 안내서가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의 수도 꽤 있긴 한가보다. 내가 갔을 때 동양 사람은 거의 일본인이거나 중국인이긴 했지만. 안내서는 정말 잘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방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호로 적어주고 계단과 방향까지. 그리고 그 방 하나하나에 딸린 설명도 다 안내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어 거의 공부하는 수준으로 자세히 읽으면서 구경다녔다. 건축 양식이라든지 인테리어까지. 방에 놓여진 의자, 테이블 하나하나와 벽에 걸려진 여러 폭의 그림에 대한 설명까지 모두 나와 있어서 성을 구경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성을 다 구경하면 들어갔던 입구로 다시 나오게 된다. 다행히 햇빛이 나고 기온이 올라가니까 안개가 걷히고 흐렸던 하늘이 푸르러졌다. 성에 들어가기 전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면 정면에는 성의 옆면 입구가 있고 왼쪽으로는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성을 보기 전엔 일단 무시했던 통로를 지금에서야 들어간다.


이 정원은 디안느 드 뿌아티에의 정원. 겨울에 여행을 다니면 이게 아쉽다. 유럽 여행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 중 하나가 넓고 잘 구성된 정원인데, 정원의 하이라이트는 꽃이란 말이다. 봄이 되면 장미가 피고 여름에는 무궁화가 만개한다고 한다. 무궁화 나무를 보니 괜히 반갑고 ^^;;


성의 외관을 보면 지반위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과 체르강을 가로질러 아름다운 아치형 기반 위에 길게 뻗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위에 보이는 것은 그 다리 위에 건설된 건물의 내부, 화랑이다. 1577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쉬농소성은 제 2차 세계 대전 때 폭파 위험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 이 성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체르 강이 점령 지역 경계선이 되어 쉬농소는 애매한 위치에 놓이고, 많은 사람들이 비점령지역으로 도피하기 위한 주요 장소였다고 한다. 성을 통해서 건너가면 되니깐.. 그래서 전쟁 동안 독일군 부대는 언제든지 이곳 성을 폭파시킬 수 있는 준비 상태를 유지했다고 한다. 화랑의 창문에서 보이는 체르강.


쉬농소에서 아쉬웠던 게 더 좋은 각도를 잡아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못 가게 막아놔서 사진 찍는 데 한계가 많았다. 저 낮은 담벽 너머로 바로 체르강이 흐르고 있다. 저 아치 사이로 체르강 수운이 시원스럽고 예쁘게 흐르고 있는 걸 같이 찍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이쪽은 이제까지 구경했던 성의 뒤편에 있는 정원인 까트린 드 메디치의 정원. 이곳이 더 성하고 가깝고 멋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정원을 지나 쭉 걸어들어갔는데,


결정적인 지점을 또 못 가게 막아놨네.. 좀더 안으로 + 뒤로 가서 찍고 싶었는데. 더 속상했던 건 원래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아니라 겨울이어서 비성수기라 정원 여기저기 보수하고 공사하느라고 막아놓은 거였어서. 나중에, 날 좋은 어느 날엔가 프랑스를 다시 오게 된다면 쉬농소는 꼭 들러야겠다는 미련만 남게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난 이런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단 말이다..ㅠ 어차피 강을 건너갈 수 는 없지만, 쉬농소의 감상포인트는 저 아치형 다리라구.ㅠ


이대로 발길을 돌리면 이제 다시 이 성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한참을 보고 서 있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까트린 드 메디치의 정원 출구 쪽에는 16세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농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겨울이라 밭만 일구어 놓았지만 이곳에서는 성 내의 꽃꽂이를 위해 100 종 이상의 화초, 400 그루가 넘는 장미목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아침에 흐렸다고, 안개가 꼈었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파랗고 예뻤던 하늘. 구름이 꼭 하늘색 도화지에 색칠해 놓은 것 같았다. 난 이곳의 이런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너무너무 좋아서, 버스 시간때문만 아니라면 두 세시간은 더 있고 싶었다.

자연의 힘인가. 자연을 보고 내음, 소리,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편해지고 내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 학기의 한 번, 방학 때 한 두 번 정도는 우리 나라의 시골과 자연을 꼭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일단, 사람이 여유로워지면 머릿속에 맑고 비워지는 듯 하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생산적인 생각 ^^


버스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쉬농소 마을을 돌아봤다. 무지하게 작았다. 정말 이게 전부였다 ^^;; 버스노선상으로는 쉬농소 성에서 한 정거장 더 가면 쉬농소 시내가 나온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잘못하다간 버스를 놓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진 못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저 멀리까지 펼쳐진 포도밭과 농가. 어디서나 포도밭을 볼 수 있을만큼 이곳이 또 와인으로도 유명하고, 와인투어도 따로 있다는데. 내가 와인을 좀 알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곳 뚜렌이 지금보다도 더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랑스는 유난히 베이커리가 많이 눈에 띄었다. 숙소에서 나가서 딱 5분만 걸어도 3개의 베이커리를 만날 수 있었으니. 그리고 중요한 건 하나같이 다 맛있다. 난 점심은 베이커리에 들어가 매일 다른 종류의 방을 먹어보는 점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난 바게트를 무지하게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때도 시험기간엔 꼭 뚜레쥬르에서 바게트 사다가 도서관에서 뜯어먹으면서 공부했었는데. 여기는 빵이 거의 바게트처럼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 하나하나가 가지각색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바게트도 모양도 서로 많이 다르고.

점심과 저녁 길을 가면 길쭉한 바게트를 종이 봉투에 넣어 한 손에 안고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것 또한 여행다니기 전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잡았던 프랑스인들의 이미지 중 하나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좀 그래서 찍진 못했다..

사진에서 맨 뒤에 있는 저건 쵸코칩이 들어간 바게트로 그 날 나의 점심.. 나머지 세 개는 영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기념으로 줄 마카롱. 뭔가 기념품을 사고 싶었는데 성의 그림이나 사진을 사자니 갔다와보지 않은 사람에겐 전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또 친구들이 잘 먹으니까.. ^^;;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먹거리를 하나 샀다. 난 첫날 커피향의 마카롱을 사먹어 봤는데, 어휴 너무 달아서 난 다신 못 먹겠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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