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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Daily

Egham

JEK Hong 2010. 5. 6. 05:49

이곳에 와서 짧으면 일주일, 길면 이주일에 한 번씩은 꼭 장을 보러 나간다.
과일은 매주 화요일마다 캠퍼스 안에서 열리는 Fruit market에서, 이 날은 Oriental Market도 같이 서서, 종갓집 김치도 매주 사 먹을 수 있다!
(어제 과일 실컷 사고 김치를 까먹고 사지 못했다.. 김치 없이 한 주를 보내야 하는데ㅠ 여기 오기 전엔 나한테 이렇게 김치가 중요한 줄 몰랐다)
고기, 쥬스, 빵 뭐 이런 주식과 반찬 거리는 캠퍼스에서 나와 15분 쯤 걸어가면 Egham 시내에 테스코가 있다. 여기서 장을 보고 낑낑대고 집에 돌아온다.
귀찮긴 하지만, 산책하고 바깥 공기 쐴 겸 기분좋게 나갔다 온다.

저저번주 쯤에 테스코 가던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 봄향기를 내뿜으면서 점점 푸르게 변하고 있는 에검을 찍고 싶어서
+ 엄마가 에검 마을길들이 보고 싶다고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해서. 이래저래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마을길을 걸으면 길가마다 아기자기한 집에 주욱 서 있다.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집들을 구경하면서 가면 테스코든 에검 역이든 금방 도착한다.


집 앞 정원에 집 주인들이 정성스럽게 심어 놓은 꽃은 또 하나의 볼 거리다. 집 앞 정원을 보면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일지 조금씩 상상이 된다. 정원에 피어 있는 꽃은 계절마다 바뀌던데, 저런 정원일을 하면서 무지하게 부지런해야 할거야 아마.


에검의 집들 중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집. 각종 토기를 무질서하게 벌여 놓은 저 화단이 참 좋다. 정리되지 않으면서도 투박하게 꾸민 느낌. 가을과 겨울에는 없었는데 잔디밭의 저 기구도.. 어쩜 저렇게 센스있게 내어놓으셔는지.


이곳의 집들의 특징은 앞마당은 저렇게 좁고 작은 꽃들로 장식된 대신에, 뒷마당이 있다. 무지하게 넓게. 이 뒷마당은 집 안으로 들어가 뒷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어서 외부에서는 볼 수가 없다. 뒷마당은 앞마당과 비교할 수 없다. 집집마다 다르지만 보통 앞마당의 배로 크고 내가 가끔 방문하는 Veronica 아주머니의 뒷마당은.. 완전 나의 로망이다. 지금 내 방의 세 배 만한 크기에, 잔디밭과 주위의 꽃.. 그리고 정원의 맨 안 쪽 구석에는 큰 새장 모양의 조형물과, 그 안에는 탁자와 의자, 그 옆에는 흔들 의자. 아.. 집에 이런 정원이 있다면 정말 영화처럼, 햇살을 받으면서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바깥에서 새소리를 들으면서 책 읽을 맛이 날텐데.


이 집은 에검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집이다. 이 집은 날 모르는데, 그냥 나 혼자 좋아한다. 지나가면서 집이 보이면 혼자 기분 좋아지고.. ^^;;


가을에는 잔디밭을 죽 둘러서 너무 예쁜 제라늄들이 피어있던 정원인데, 겨울에는 한동안 꽃이 피지 않아 봄에는 어떨까 제일 기대했던 정원이다. 그러다가 날이 풀리고 봄이 되니 역시나. 요즘도 가면 저 상태로 꽃이 피어 있다. 저렇게 꽃이 항상 피어있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손이 갈까. 이곳은 연금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은퇴를 해도 현역시절 못지 않게 돈을 받는다는데, 은퇴하신 분들은 그 돈을 가지고 넉넉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렇게 마당이 잘 손질되어 있고 예쁜 집은 주로 은퇴한 부부의 집이라고 한다.

앞마당에서, 귀여운 목소리로 서로 재잘 거리면서 미니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햇살 좋은 날 벽돌에 시멘트를 바르고 직접 집앞 담을 쌓는 아저씨. 꽃들 사이에서 잡초를 뽑는 할머니. 벽돌에 묻지 않게 조심조심 창살에 페인트 칠을 하는 아저씨. 각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 들어가면 각자의 일이 있을 거고, 바쁠 거고.. 힘든 일도 있고 항상 그런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 비치는 영국 사람들은 다 이런 이미지다. 여유롭게, 행복하게.. 맞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소소하게도 행복해 보인다.

서울에 가면 내 주위를 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일단 나부터가 몸은 바빠도 마음은 여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난 여유를 배워간다. 몸과 마음이 바쁘다는 표현을 쓰지만, 그리고 졸업을 앞둔 나도 이제 정신없이 살아야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마음 한 켠에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고,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서 주위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현실에 오염되지 않은 공간을 조금은 비워 놓을 필요가 있음을 배워간다.
나도 이곳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내 실제 생활이 어떤지를 떠나서, 다른 사람이 나를 봤을 때, '여유롭고 행복하게 사는구나...'라고 느끼게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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